[최예원의 스캔들로 읽는 서양미술사 80장면] 1. 벽에서 떨어지는 걸작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천재의 실험과 20년 넘는 복원이 남긴 질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D-Art). 크기 축소.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 1495~1498년 ·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 가운데 하나는 완성된 지 20년도 지나지 않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걸작을 위태롭게 한 것은 전쟁만이 아니었다. 더 천천히, 더 정교하게 그리고 싶었던 화가의 실험과 작품이 놓인 환경도 그 운명을 바꾸었다.

 

천재의 실험, 벽에 남은 대가

 

밀라노의 통치자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후원으로 시작된 작업에서 다빈치는 전통적인 프레스코 기법을 택하지 않았다. 젖은 회반죽에 안료를 입히는 프레스코는 벽이 마르기 전에 작업해야 한다. 한 번 그린 부분을 거듭 고치며 빛과 표정을 다듬고 싶었던 그에게는 제약이 컸다.

 

다빈치는 마른 벽의 바탕층 위에 안료를 올렸다.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듯 섬세한 표현을 쌓을 수 있었지만, 색은 프레스코처럼 벽과 단단히 결합하지 못했다. 이 기법과 식당의 환경 조건이 맞물리면서 완성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안료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1517년 이곳을 찾은 안토니오 데 베아티스도 그림의 훼손이 시작됐다고 기록했다.

 

문이 뚫리고, 폭격을 견디고

 

그 뒤의 세월도 가혹했다. 17세기에는 식당으로 통하는 문을 내면서 그림 아래쪽, 예수의 발이 있던 부분이 사라졌다. 1943년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식당 건물이 크게 파괴됐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화면은 화가가 남긴 장면이면서 동시에 훼손과 보존의 역사를 통과한 생존자다.

 

복원은 어디까지 원작인가

 

1977년부터 1999년까지 이어진 대규모 복원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피닌 브람빌라 바르칠론이 이끈 작업은 후대의 덧칠 아래 가려진 다빈치의 흔적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전 시대의 복원이 사라진 부분을 다시 그려 채우는 데 가까웠다면, 현대의 복원은 남아 있는 원작을 보존하고 드러내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그러나 덧칠을 걷어낸 뒤 나타난 옅은 색과 빈 부분을 두고 논쟁도 일었다. 우리가 익숙하게 기억하던 그림을 지키는 것과, 화가가 실제로 남긴 흔적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같은 일이 아니다. 《최후의 만찬》의 스캔들은 바로 그 틈에 있다.

 

이 작품 앞에서 감탄하게 되는 것은 천재의 솜씨만이 아니다. 무너지는 그림을 다음 세대에 건네려는 사람들의 선택도 함께 보인다. 완벽해서 영원한 걸작이 아니라, 불완전하기에 끝없이 돌보아야 하는 걸작. 벽에 남은 이 한 장면이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예술을 보존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남기는 일인가.

 

한 줄로 읽는 첫 장면 
더 자유롭게 그리고 싶었던 천재의 실험은, 인류가 가장 조심스럽게 돌보는 벽화를 남겼다.

 

글 최예원

 

사실확인 참고: 최후의 만찬 미술관(Museo del Cenacolo Vinciano) 공식 보존·복원 안내. 공식 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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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11.06 11:17 수정 2026.11.0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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